이불과 술잔,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는 재영·재훈이 집.
현재 경남지역 아동은 75만2576명. 방과후 1시간 이상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나홀로 아동’은 이 중 7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방과 후 아카데미, 지역아동센터, 아이돌봄 지원사업 등 홀로 있는 아동을 위한 제도가 있지만 충분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통영 아름이 사건도 제대로 된 양육과 보호가 뒷받침되지 못한 환경이 근본적 원인이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아이들을 돌보던 공동체문화가 사라진 지금, 돌봄 사각지대에서 방임되고 있는 아동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찾는다.
학교에서 돌아와 문을 열자 바닥에 토사물이 있었다. 순간 재영이(10·창원시 마산회원구·가명)와 재훈이(8·가명)는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은 엉망이었다. 이불과 슬리퍼, 깨진 소주병, 옷가지가 나뒹굴었고 아빠는 인사불성이 돼 있었다.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가 났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한 아빠가 앉은 자리에서 바지에 변을 본 것이다. 유리 파편을 밟아 상처가 난 아빠의 발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맺혀 있었다. 이런 날이면 늘 그렇듯, 새엄마는 집에 없다.
형제에게 이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일주일 중 사흘은 오늘과 같다. 지역아동센터에 있다가 아빠가 술이 깰 때쯤 새엄마와 함께 집으로 오면 된다. 분명 어디선가 새엄마는 “더 이상 저 인간이랑 못 살겠다”며 가슴을 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무섭진 않다. 아빠는 평소 일용직 노동자로 열심히 일하며 점잖고 예의도 바르다. 하지만 형제의 생모와 이혼할 때부터 시작된 잦은 음주는 아빠를 변하게 했다. 술만 마시면 집을 어지럽히고 새엄마를 못살게 군다. 병원에서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번번이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5년 전 새엄마가 들어와 형제를 돌보기 전까지 형제는 대취한 아빠가 꼬꾸라져 있는 집에서 먹고 자며 ‘각자 알아서’ 자랐다.
부모의 정성 어린 돌봄이 필수적인 유아기의 공백 때문인지 형제는 심각한 학습부진을 겪고 있다. 또 웬만한 자극에는 반응을 하지 않는 무감각과 무기력에 길들여져 있다.
지난 3월 말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보호사가 재영이와 재훈이의 집을 처음 방문한 날도 오늘과 비슷했다. 아빠는 만취 상태, 새엄마는 피신 중, 형제는 아침을 굶은 채 터벅터벅 학교로 갔다. 그날 이후부터 아빠가 알코올의존증세를 보여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형제를 데리러 온 경우가 오늘로 4번째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재영·재훈 형제가 ‘방임’ 상태에 있다고 판단했다. ‘방임’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양육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아동복지법이 규정하는 아동학대의 한 유형이다. 즉 밥을 주지 않거나 학교를 보내지 않고, 예방접종을 시키지 않는 등 양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아동학대다.
2010년 전국아동학대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판명된 사례 중 방임이 33.1%로 신체학대나 성학대, 유기에 비해 월등히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영·재훈 형제와 같이 적절한 돌봄 없이 혼자 있게 되는 아동들은 각종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글·사진= 김유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