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에 사는 김모씨는 2005년 12월 중학생인 두 딸에게서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여덟 살, 일곱 살 때 세 들어 살던 50대 집주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딸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집주인을 즉시 경찰에 고소하려 했지만 1998년 봄 발생한 이 사건은 당시 성범죄 공소시효인 7년을 넘긴 상태여서 고소 자체가 불가능했다.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어 민사 소송으로 전환한 이 사건은 1심 원고 승소, 2심 원고 패소 판결을 거쳐 현재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법안이 추진된다. 김옥이 한나라당 의원은 5일 여야 국회의원 30명과 함께 성범죄 피해 아동과 청소년이 성년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고, 가해자 처벌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성폭력특별법' '청소년성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는 2007년 형사법 개정에 의해 7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된 상태다.
개정안에 제시된 처벌 형량은 ▲13세 미만 아동 강간죄의 경우 현행 7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10년 이상, 강제추행은 현행 3년 이상에서 5년 이상 ▲19세 미만 청소년 강간은 현행 5년 이상에서 7년 이상, 강제추행은 현행 1년 이상에서 2년 이상 유기징역이다.
김옥이 의원은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아동 성범죄 발생건수만 1220건에 달하는 등 아동 성폭력이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증가하고 있다"면서 "공소시효 중단과 형량 강화가 아동 성범죄를 줄이는 특단의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부도 아동 성범죄에 관한 한 공소시효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긍정적인 입장이다. 여성부 이복실 권익증진국장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아동 청소년 성범죄에 관해서는 공소시효가 아예 없거나 정지된다"면서 "국무총리 직속 '아동여성보호대책추진점검단'에서도 공소시효제 개선과 성범죄자 인터넷 신상 공개를 올해 주력 과제로 정했다"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는 신중한 태도다. 형사법제과 김태호 검사는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가 연장된 지 불과 1년밖에 안됐고 국민 법 감정과 시행령 추이를 더 관찰해야 한다"면서 "국제적 인권문제와도 관련돼 있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부모들의 모임(미모사) 곽희영 회장은 "그 상처와 고통이 평생을 지배하는 아동 성범죄는 살인에 버금가는 중죄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남 해바라기 아동성폭력지원센터 신기숙 소장은 "자신을 보호할 힘과 판단 능력이 미숙한 아이가 스스로 가해자를 신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돼 범인을 끝까지 추적,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