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무관심의 치명적 폭력 '아동 방임' 급증

2013-03-07

2013년 03월 07일 (목)

작년 시내 아동학대 449건
경제난 가중·맞벌이 늘어
방임 급증 전체 20% 차지
관련법 없어 피해 못막아

인천에 사는 8살 운정(가명)이의 하루는 집이 아닌 거리에서 시작해 거리에서 끝난다. 한창 부모 형제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시기지만 운정이는 집 대신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을 헤매야 한다.

운정이가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면서부터다. 아빠와는 연락두절, 엄마는 알코올중독과 성격장애로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못하는 정신장애인이다. 이런 엄마 밑에서 방치되다시피 자란 운정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거리로 나오는 길 밖에 없었다.

이렇게 거리를 배회하다 경찰에 의해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인계된 것이 벌써 4번째. 8살 운정이의 꿈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멈췄다. 운정이는 "엄마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집에서 살고 싶지만,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 같다"며 "지금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지역에서 운정이처럼 가족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거나, 부모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동 학대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인천에서는 의붓딸에 소금을 강제로 먹여 숨지게 한 사건과 초등학생이 아버지와 의붓어머니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아동학대에 대한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급기야 송영길 인천시장은 오는 11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긴급 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관련기사 3면

6일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지역의 아동 학대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아동보호기관 등에 접수된 아동 학대 사례는 396건이었지만 2010년에는 406건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449건을 기록했다.
┃그래프 참조

지난해 신고된 449건의 아동학대 사례 중 가장 많은 유형은 '방임'으로 무려 20.4%(92명)나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정서학대' 9.1%(41명), '신체학대' 2.6%(12명), '성학대' 1.3%(6명), '유기' 0.2%(1명) 등의 순이었다.

학대를 하는 부류는 친부모가 74.4%(334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유형 중 방임 사례가 많은 것은 경제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방임은 말 그대로 아이에게 밥을 주지 않거나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인데,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생계형 방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과거에는 신체학대 사례가 많았지만 맞벌이 하는 가정이 많아지고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아동을 방치하다시피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경제악화에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포기하는 경우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아이들이 전문 기관에서 꾸준히 치료받고, 보호돼야 하지만 현행법상 이런 것을 강제할 수 있는 법규가 없어 상황이 악순환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이웃이나 친척들이 아동학대를 가족 문제로만 생각해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다"며 "학대받은 아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김명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