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정도언의 마음읽기]아동 학대는 영혼의 파괴다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소파 방정환 선생의 노력으로 어린이날이 제정된 뿌리는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였다고 한다. 그는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개별적 인격으로 대우하자는 뜻에서 ‘어린이’(‘젊은이’와 동격)라는 말도 만들었다.

올해 어린이날은 지나갔다. 그리고 아동학대는 이 집, 저 집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아동학대 건수가 증가했다는 보건복지부 통계보다 학대받으면서 인생을 망치고 있는 아이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더 커다란 무게로 다가온다. 그들이 어른으로 자라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역시 학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아동학대는 과거가 현재로, 현재가 미래로 전해지는 심각한 ‘질병’이다.

‘아동학대’는 20세기의 용어이지만 그 역사는 인류의 역사, 가정의 역사와 같다. 인간 본성 중 하나인 파괴적 공격성과 뿌리를 같이하고 있다. 원시사회에서 드러내놓고 일어나던 일이 현대사회에서는 집안에서 은밀하게 벌어진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원시의 학대가 주로 신체적인 것이었다면 현대의 학대에는 교묘한 심리적 학대가 추가되었다.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가정에서 일어난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이를 심리·신체적으로 괴롭힌다. 여기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부모를 떠나 생존할 수 없는 아이는 맞으면서도 부모에게 매달린다. 자신의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대상이 부모라고 이미 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관심에서 버려진 아이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심지어 매를 버는 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관심보다는 학대가 마음의 빈 구석을 메워주기 때문이다. 무관심과 학대가 교대로 이어지면 정신적 황폐는 더 심해진다. 이렇게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능력이 없다. 아이들에게 잔인하게 대하고 늙은 부모는 폐기 대상으로 여긴다. 어려서부터 쌓인 엄청난 적개심과 분노는 타인들에게 쉽게 옮겨간다. 그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아동학대를 통해 아이의 영혼을 죽이기는 쉽다. 몸이 살아있다고 해서 산 것이 아니다.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아이나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주체가 된다면 그야말로 ‘학대의 확대 재생산’ 체계를 만들어내는 꼴이다. 아동학대 희생자의 치료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들고 어렵다. 예방이 훨씬 더 효율적이므로 이제는 국가가 나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어린이날에 반짝, 사진찍기 위한 행사를 하기보다는 꾸준히, 학대받는 아동을 구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낳는 아이도 줄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학대받는 아이가 늘어나고 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아동학대의 사회적 영향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동학대가 그저 아이들 문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는 윗사람 중에는 어려서 아동학대를 당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직적 관계와 힘이 존재하는 곳에는 늘 학대하는 자와 학대받는 자가 있다,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면 도움이 된다, 그러니 어느 누구에게도 아동학대는 남의 이야기, 먼 이야기가 아니다, 라고.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부모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여러분이 아이에게 하는 행동은 결국 부메랑처럼 칼이 되어 여러분 가슴에 돌아온다는 것을.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분 자신과 아이를 빨리 구하길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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