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허은숙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가출 후 모텔에서 세 아들을 질식사시킨 가정주부부터 3살 아들이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때려죽인 어머니, 아이를 살해한 후 시신을 저수지에 유기한 30대 엄마까지 자녀 살인 사건이 잊을 만하면 터져나와 우리를 소름 돋게 하고 있다. 특히 이들 사건의 가해자는 친엄마인 경우가 많았다.
“아들이 나처럼 살까봐 일을 저질렀다”
부모 손에 죽은 아이들이 자기보호 능력이 없는 만5세 이하가 많은 점도 주목된다. 살해된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 곧 약자였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아동 13명(여아 7명)이 학대를 받다 사망했고, 이 가운데 9건이 가정에서 발생했다(‘2011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숨진 아동의 연령은 만1세 미만에서 만17세까지 다양했고, 특히 만5세 이하 아동이 77%를 차지했다. 숨지기 전까지 매일 학대를 당한 경우가 7건(53.8%)에 이르고 일회성 학대는 3건에 불과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부모를 피해 도망치기 어렵고 외부로 노출될 가능성이 적은 만5세 아이들에게 피해가 집중됐다”고 말했다.
세상을 놀라게 한 ‘주남저수지 남아 유기사건’도 친엄마 최모씨가 남편과 별거하던 중 가출해 서모씨 부부와 함께 저지른 사건이었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시에서 세 살배기 아들을 때려숨지게 한 뒤 시신을 가방에 담아 주남저수지에 버렸다.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학대받고 살아온 최씨는 경찰에서 “아들이 나처럼 살까봐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뿐 아니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지난해 말 아들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학대해 숨지게 한 아버지 박모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하고 어머니 주모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사실혼 관계였던 박씨 커플은 보호시설에 맡겨뒀던 아들을 데려온 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상습적으로 때리고 학대했다.
중견 탤런트 부인이 가출 후 세 아들을 질식시켜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김모씨는 지난해 8월 당시 8살, 5살, 3살 된 세 아들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켰다. 구속된 김씨는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김태형씨는 얼마전 방송 인터뷰에서 “생활고 때문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은 늘 아내에게 해준 것 같다. 빚도 갚아줬다”며 “사건 직후 아내와 이혼했다. 나한테 인정 못 받고 시부모한테 힘들어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부모의 자녀 살해 사건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심각한 생활고와 부부 갈등, 우울증과 편집증, 양육 철학의 부재 등 다양하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엄마가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에선 부부 갈등이 극심한 경우가 많다. 배우자에게 경제적·심리적 지원은커녕 학대받으면서 생긴 엄청난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해 가장 취약한 대상인 자녀를 타깃으로 삼는다”고 지적했다. 아들을 죽인 후 저수지에 버린 엄마처럼 어렸을 때 학대받은 피해자가 어른이 돼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대받은 부모가 자녀를 다시 학대하는 경우가 3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동학대 83%가 부모·보호자
자녀는 부모 소유물 아니다
아이를 살해한 후 부모가 자살하는 사건도 종종 벌어진다.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살해 후 자살 사건으로 대부분 엄마가 아이를 죽인 경우다. 연구해보니 가정폭력을 일삼는 배우자를 둔 여성이 많았다”며 “자녀를 정서적으로 독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경우가 많다. ‘내가 아니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힘들게 살 테니 내가 데려간다’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동일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양적 정서가 반영된 독특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엄마들은 대부분 자녀를 분신으로 여긴다. 내가 못 살면 너도 못 산다는 의식이 지배적”이라며 씁쓸해했다.
아이의 운명을 엄마가 결정하고 아이를 전적으로 책임져야겠다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박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생각을 하는 이유는 엄마가 없을 때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며 “고아원이나 보육시설이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엄마가 없더라도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전국의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신고되는 아동학대의 83%는 부모나 보호자가 가해자다. 그런데도 체벌을 포함한 자녀 양육을 부모의 권리나 의무로 여기고, 가정폭력은 가정 내 갈등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사회문제”라며 “저소득 가정에 국한된 아이돌보미 사업을 확대해 위기 가정에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 아이사랑카드나 고운맘카드 같은 보육료 지원 카드를 수령할 때 부모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부모 교육이 절실하다. 요즘의 부모 교육은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치중돼 있다. 부모의 역할이나 감정조절법 등을 알려주는 부모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muse@wome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