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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다시는 아동학대 없어야” 이서현 보고서 2014-02-24

조회수:1243

ㆍ사망사건 진상 밝히고 개선방안 담아… 정부가 할 일 민간단체가 대신

지난해 10월 24일 울산시 울주에서 8살 이서현양이 함께 살던 박모씨의 학대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박씨는 이양이 반신욕 중 사망했다고 112 전화로 신고했다. 현장을 수상히 여긴 경찰은 부검을 통해 양쪽 갈비뼈 16개가 골절된 상태임을 확인했다.

울산지검 형사2부는 박씨에게 살인죄 등을 적용해 구속했고, 친부는 불구속 입건을 해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3차 공판이 열린 2월 11일 이양의 친모는 울산지법 앞에서 삭발을 하며 피의자 박씨에 대한 법정 최고형을 요구했다. 이양은 2009년 부모가 이혼한 후 양육권을 가진 친부, 피의자 박씨와 살았다. 2010년 이양은 이서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개명했다.

계모의 학대로 목숨까지 잃은 이양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경북 포항에서, 인천에서, 울주에서 이양이 아동학대에 시달리는 동안 여러 차례 사회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동학대사건을 처리하는 제도적 장치의 미비와 인식 부족으로 이양이 끝내 희생된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정부 종합대책 수립에 반영을” 촉구
제2의 이서현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이서현 사건의 전개과정과 제도적 문제점, 개선방안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서현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남윤인순 국회의원)는 150여쪽의 비공개 보고서 가안을 완성했다. 2월 말까지 보고서를 완결한 후 공개할 계획이다.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가 전체회의를 열고 있다. | 남윤인순 의원실 제공


실무를 맡은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 김희경 사무국장(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조사 내용은 더 이상 수정할 것이 없고 정책 개선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작업만 남아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지난 1월 24일 중간조사 발표에서 ‘이서현 보고서’의 요약문을 발표했다.

남윤인순 의원(민주당)은 ‘이서현 보고서’에 대해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실제 벌어진 일에 근거해 종합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보고서”라고 평가했다.

아동학대 피해자의 이름을 딴 ‘이서현 보고서’는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다. 2000년 영국에서 빅토리아 클림비가 아동학대로 숨졌을 때 영국 정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림비 보고서를 만들었다.

남윤인순 의원은 ‘이서현 보고서’를 최근 정홍원 국무총리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직접 전달했다. 남윤인순 의원은 “정부는 보고서에서 제안한 제도개선 방안을 아동학대 관련 종합대책 수립에 적극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서현 보고서’에는 아동학대를 처리하는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적 미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특히 울산 조사에서는 초등학교 교사, 학원장, 치료 의사 등 아동학대 신고의무자가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의심사례들이 하나둘 확인되면서 이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이양이 폭행에 의한 대퇴부 골절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고, 2도 화상을 입고 12일간 초등학교에 결석했고, 화상 때문에 학교에는 흰 면장갑을 끼고 왔고, 담임교사가 이양의 얼굴에 멍이 든 것을 발견했는데도 이양에 대한 보호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양이 상처를 입은 사실을 신고의무자가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만 했더라도 사망사고에 이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사 결과 신고의무자 중 단 한 명도 신고의무자 교육이나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받지 않았다.

학원의 경우 본인이 신고의무자인 줄도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서현 보고서’는 개선 필요사항에 “신고의무자 직군 종사자에게 자신이 신고의무자임을 알도록 고지할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고, 각 직군별 신고의무자의 아동학대 징후 관찰과 대응 요령을 배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후관리 기관 개입 강제조치 필요
‘이서현 보고서’의 비공개 초안. /경향신문
이양에 대한 학대 신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0년 포항에서 이양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지만 가해자와 이양이 인천, 울주로 이사하면서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개입이 중단돼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것이다.

‘이서현 보고서’는 “사례를 다른 지역으로 이관할 경우 이전 기관과 신규 기관이 긴밀히 협의하는 공조체계를 구축해야 함”이라고 개선 필요사항을 적시했다. 조사내용에 따르면 인천의 아동보호기관에서는 ‘학대피해아동 사례 이관 안내’라는 공문을 포항으로부터 접수했고, 가해자인 박씨와 수차례 통화했으나 가해자의 기관 개입 거부로 더 이상 이양에 대한 보호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서현 보고서’는 또 다른 개선 필요사항으로 “학대 판정 이후 행위자가 기관의 상담을 거부할 때뿐만 아니라 종결 이후 사후관리 단계에서 학대행위자가 기관의 개입을 거부할 때에도 개입을 강제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전문가로 위원회에 참여한 울산대 오승환 교수(사회복지학)는 “이양이 살던 아파트가 우리 집에서 100m밖에 떨어지지 않는 곳이어서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양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는 그동안 울주에서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며 “전문가들이 모여 위원회를 꾸렸을 때 2010년에 이미 포항에서 이양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접하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조사에 참여한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지만 조사를 마치고 보고서를 쓰면서 내내 우울했다”며 “이양이 포항에서 인천에서 울주에서 아동학대에 시달리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나라는 무력감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희경 사무국장은 “(이서현양 사망사건은) 아동보호체계 안에 한 차례 들어왔는데 막지 못했다”며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기에 우리 사회가 막지 못했나라는 점에서 아동보호단체와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클림비 보고서처럼 진상 보고서를 만들어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보고서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민간 위원회는 포항팀, 인천팀, 울산팀으로 나눠 지역 조사를 벌였다. 관련자 33명을 조사했다. 지역 조사에서는 어떤 단계에서 잘못되었고, 그때 어떻게 조치를 했더라면 사망사건을 미연에 방지를 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울산팀에 속한 오 교수는 “사실 현장 조사를 할 때 국가기관도 아닌 민간인들이 조사를 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애매했다”면서 “이양 사망사건에 대한 울산 지역사회의 공분이 매우 커서 의외로 조사에 협조가 잘 됐다”고 말했다.

2월 11일 오전 울산시청 앞에서 ‘하늘로 소풍을 간 아이를 위한 모임’ 회원들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대한 과태료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민간 위원회 조사였던 만큼 조사 비용은 위원들이 각자 알아서 자발적으로 부담했다. 여기에다 두 달 동안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현업과 조사활동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김희경 사무국장은 “클림비 보고서는 2년 동안 영국 정부에서 전문가들을 동원해 체계적인 조사활동을 벌이고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해 승인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면서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인 ‘이서현 보고서’는 2개월의 짧은 기간에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풀타임이 아니라 자원봉사처럼 조사했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내 자식 내 마음대로” 인식 바꿔야
조사에 개인적으로 참여한 김수정 변호사는 “영국처럼 국가가 나서서 오랜 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해야 개선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고 실천이 담보가 된다”고 아쉬워했다.

김 사무국장은 “유사 사건이 발생하면 이제는 정부가 ‘제2의 이서현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민간단체가 나서서 하는 자발적 방식의 조사방식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서현 보고서’는 “향후 심각한 학대사건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조사팀을 구성해 직접 조사하고, 18세 이하의 모든 아동 사망사건은 사망사례조사팀의 점검을 통과하도록 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서현양 사망사건은 아동학대 문제에 일대 전환점이 됐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민간 위원회가 자발적으로 꾸려졌고, ‘이서현 보고서’라는 네이밍 보고서가 최초로 작성됐다.

네이버에서는 이양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하늘로 소풍을 간 아이를 위한 모임’이라는 블로그가 만들어졌다. 블로그 회원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아동학대 반대와 이양 추모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승환 교수는 “지역에서 지역주민들이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추모행사에 참석했고, 이런 여론이 정부에 압력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신속하게 국회에서 통과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법무부는 2월 11일 국무회의에 이 법의 제정에 따라 아동학대 부모를 형사처벌하고 피해아동 보호를 위해 친권을 제한·정지할 수 있도록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토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남윤인순 의원은 “지난 2월 4일 보건복지부와 법무부·교육부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었고, 이때 ‘이서현 보고서’에 실린 제도개선 사항을 함께 검토했다”면서 “정홍원 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아동정책조정위원회에서 2월 말에 종합대책을 확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2년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는 모두 1만943건이었다. 이 중 아동학대가 의심돼 현장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의심사례는 8979건이었고, 아동학대로 판정된 것이 6403건이었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가정 내에서 부모에 의해 발생했고, 아동보호기관의 사례 개입이 종결된 후 다시 신고 접수된 재학대 사례는 모두 914건으로 전체의 14.3%에 이르렀다.

오승환 교수는 “내 자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때리는 훈육은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며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인식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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